한국의 청소년 영화교육이라니 뭔가 익숙한 듯 하면서도 생소합니다.
학교를 비롯해서 다양한 기관·단체 등에서 이미 영상제작부터 영화 리터러시까지 다양한 영화/미디어 교육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도 영화교육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나 교육 방식·교육적 효과 등에 관한 공론화 과정이 무르익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 호 <해외사례 이모저모>에서는 해외의 청소년 영화교육기관의 운영 사례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비춰봅니다. 학교 안팎의 영화 교육 경험과 해외의 청소년 영화교육 사례를 바탕으로 현재 우리의 영화교육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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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운영사례로 비춰 본 대한민국의 청소년 영화교육
장다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프로그래머)
15년차 영화강사, 추억팔이 좀 하고 가실게요.
원고를 위해 영화교육현장의 근10년을 떠올리다보니 본의 아니게 개인적 기억들이 함께 뒤엉켜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밑의 몇 단락은 푸념으로 채워지게 될 것 같다.
영화분야 예술강사로 활동한지 올해로 꽉 채운 15년이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꾸준히 자리를 지킨 나의 전문분야가 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15년 전 영화교육 분야는 개인적 관심은커녕 자세한 정보조차 얻기 힘든 분야였다. 그나마 교직을 이수한 몇몇 친구들이 정교사자격증을 이야기 할 때 ‘아, 고등학교에서 영화도 배우는구나, 세상 좋아졌네’ 정도의 생각에만 그쳤을 뿐, 학업을 유지하며 최소한의 생활비가 필요한 나에게 영화교육이라는 말은 생소하기 그지없는 단어였다.
선배의 스튜디오에서 두 달간 편집알바를 했지만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회당 5만원하는 주말 웨딩촬영을 하고 한 주에 20만원을 벌었다. 현장경력을 시작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급하게 합류한 현장에서는 일주일 만에 팔이 빠져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낙하하는 자존감을 스스로 멀뚱하게 바라보며 지내던 중, 1년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중고등학생 대상 영화수업을 진행할 강사자리였다. 교직이수가 없어도 괜찮다고 했다. 무엇보다 잘만하면 다음해에도 채용가능하다는 말에 홀라당 넘어가 이후로도 몇 년 동안 개인학업과 강사스케쥴을 조율하며 열심히 수업을 했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창체(창의적 체험활동)와 교과연계수업 동아리수업을, 미디어센터에서는 리터러시 수업과 제작 수업을 병행했다. 내 정신연령이 낮은 건지 몰라도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더 즐거워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깜냥도 안 되는 주제에 어느 순간부터 내가 선생님 호칭을 매우 자연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희미한 보람도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예상 못한 사건사고도 많아 힘들기도 했지만.(교실 벽에서 거대한 여성성기 그림과 내 이름을 발견한 적이 있다)
어쨌든 매년 12월이 되면 안면을 튼 아이들이 머리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하고, 나 혼자 찍고 있는 제작수업은 또 무슨 의미인가 싶어 ‘그래, 이제 그만두자. 영화판으로 돌아가자’(그 당시만 해도 영화교육을 영화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라고 결심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항상 기다렸다는 듯이 선물 같은 위로가 시작된다. “선생님, 정말 재미있어요!”, “학교에서 영화수업이 제일 좋아요”, “영화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해, 한 해 이런 애정 어린 마음을 받으며 그렇게 난 그 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영화교육의 타이틀을 단 (그러나 아무도 관심없는) 영화선생님, 말 그대로 ‘영화쌤’이 되었다.
2000년 이후, 대한민국 영화교육의 현주소
최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어딜 가나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만큼 테크놀로지에 종속되어 있는 현대에서 기술의 변화와 그 변화의 속도는 많은 것들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런 이유로 테크놀로지와 면밀한 관계를 맺는 영화매체에 대한 관심 또한 뜨겁다. 이는 영화산업뿐만 아니라 영화교육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매체들과 쏟아지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 이해하는 능력, 적용하는 능력, 분석 및 비판적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교육을 통해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이는 미디어교육 분야와도 결을 함께 한다. 미디어 교육과 영화교육은 매체교육과 예술교육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시작하지만 유튜브로 뉴스를 보도하고 넷플릭스로 개봉영화를 만나게 된 지금은 그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 보인다.
잠시 영화교육의 흐름을 살펴볼까 한다. 영화교육은 15~2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닌다.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하여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닦아 온 미디어교육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에 시작한 분야이다. 2000년대 초 다양성의 부재 및 획일적인 교육환경으로 인해 기존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예술교과들이 관심을 받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영화교육,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예술 교육이다. 그 시작에서 항상 언급되는 것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아르떼)의 학교문화 예술강사 지원 프로그램이다. 2002~2003년 국악을 시작으로 영화는 2004년부터 본격적인 학교 영화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실상 영화교육이 시작되었을 때, 큰 관심을 가질 법도 한 영화계에서는 별반 반응이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영화’라는 타이틀만 있을 뿐 이것이 영화의 영역이기 보다 교육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강사 프로그램은 당시 정부가 대책사업의 일환으로 내세운 청년일자리 창출사업의 형태였기 때문에, 그 불안정성을 믿고 영화교육에 적극적으로 합류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고 형식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영화계의 성향 상, 아르떼가 진행하는 학교교육 프로그램은 고루하고 관료적인 분위기가 강한 학교교육의 한 영역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영화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한 영화학회와 몇몇 연극영화과 교수들에 의해 영화교육표준안 연구 및 교과프로그램 개발도 시작되었지만 역시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한편으로 연극영화 교직이수 및 자격인정도 그 맹점이 드러났다. 연극영화 교직을 이수하는 것도 학과 내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었고 교직이수를 한다고 해도 전임교사로 채용될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특성화 고등학교도 98년에야 비로소 그 형태가 인정된 케이스여서 영화계 및 영화전공자들에게 영화교육은 더더욱 실체 없는 허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2012년 문화예술교육지원법 개정에 따라 문화예술교육사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기를 타고 연극교육은 정식 교과의 영역으로 편입하였고 2010년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화산업의 공적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교육연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 영진위는 2017년 청소년영화공교육 간담회를 시작으로 영화교육활성화방안, 청소년영화교육기본계획 연구를 진행하였고 2019년 부산에 위치한 두 곳의 초등학교를 영화중점학교로 운영하며 큰 이목을 끌었다. 이는 영진위가 상징적인 영화교육기관의 역할로 대의적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 성과로 부산시교육청은 중점학교로 참여 했던 한 학교를 2021년 연구학교로 선정했다. 영화교육이 공교육의 고정된 지형을 뚫고 들어갔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해외의 영화교육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지, 대한민국의 영화교육과 어떤 점을 달리하고 있는지를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영국과 미국의 영화교육
1. 영국 BFI의 사우스 뱅크(BFI Southbank), 그리고 인투 필름(Into Film)
영화교육의 모델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되는 곳은 영국의 BFI 이다. 영국영화협회 (British Film Institute)를 의미하는 BFI는 1933년에 설립되었으며 영국 내 대부분의 영화교육을 주관한다. 독립된 자치기관이지만 국가의 지원을 받는 위탁 형식으로 운영되며 영국 왕실에 의해 칙허받은 비정부 공기관이다. 교육, 배급, 상영 등 다양한 영화문화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아카이브나 도서관 같은 공적공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 중 사우스 뱅크는(BFI Southbank) 어린이영화교육부터 성인교육까지 연령별 영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극장을 운영하며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상시 다양한 영화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 또한 구비되어 있다.
[사진 3] BFI Southbank 입구 [사진 4] BFI Southbank 도서관
대부분 정부지원금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교육프로그램은 무상이다. 그러나 일부는 외부 기관의 지원을 받기도 하며 사우스뱅크 내에서 운영하는 극장을 활용하여 수익을 창출하기도 한다.
영화교육의 경우 특히 청소년영화교육은 학교 내 교육과 학교 외부 교육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학교 내 교육의 경우, 미디어와 영화교과 운영을 지원한다. 영국은 중고등학교 과정에 선택교과 형태로 미디어학와 영화학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타 교과에 비해 성취도 관련으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지만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이다. 사우스뱅크는 학교 교과의 커리큘럼에 맞는 영화수업을 제공하는 <스터디 데이>[1]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위에서 말한 선택교과 과정이 이 시간에 이루어진다. 교과의 형태이지만 학교가 아닌 사우스뱅크의 극장에서 수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초등학생의 경우 영어, 지리, 역사 같은 기존 교과와 연계된 영화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사우스뱅크 극장을 이용하여 BFI가 추천하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단편영화 중 한편을 함께보고 영화읽기 및 쓰기 수업을 진행한다.
학교 밖 수업의 경우, 영화제작워크숍 형태로 진행된다. BFI 필름 아카데미[2]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수업은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다. 교과 수업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적극적인 협업과정을 통해 영화를 완성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영화가 완성되면 역시나 사우스뱅크의 극장에서 상영회를 갖는다.
사우스뱅크가 BFI의 전폭적 지원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면, 인투 필름(Into Film)은 BFI와 더불어 외부기관의 지원을 받아 학교 내 영화교육을 시행하는 단체이다. 민간단체에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투 필름의 역량이 상당히 크다보니 BFI내에 인투 필름 직속 담당자가 배정되어 있을 정도이다.
인투 필름의 특징은 공공시설 및 지역극장, 도서관 및 그 외의 시설들과 결연하여 영화교육 프로그램은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청소년교육프로그램이 지역영화문화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청소년뿐만 아니라 미디어 교육을 하는 학교 교사들에게 미디어활용 능력 및 영화제작 기초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교사양성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교사들은 인투 필름에서 제공하는 교육자료들을 전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2. 미국의 AFI (American Film Institute)[3]
미국의 국립영화기관인 AFI는 영화제작위주 교육으로 학위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정규교육기관이다. 전문 영화교육기관의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연출, 편집, 기획 등 각 세부 전공으로 분야가 구분되어 있다. 중고등학교 이상의 성년들이 대부분이지만 AFI의 특징은 상시적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최근 AFI와 파트너쉽을 맺고 있는 ‘Young Women in Film Intensive’는 L.A의 고등학생 중 여학생을 대상으로 영화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8주 간 진행되는 워크숍 형식으로 피칭, 시나리오, 연출, 촬영, 편집등 AFI의 재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의 전문교육이 진행된다. 특히 AFI 출신 영화인들로 구성되어있는 ‘멘토시스템’을 통해 함께 팀을 이루며 단편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학교에서 단체로 신청하기도 하지만, 인근에 위치한 다양한 고등학교에서 신청을 받아 지역적으로 문화혜택이 없는 학생들을 우선으로 선발하기도 한다. 이 수업은 L.A 문화청의 지원으로 이루어 진다.
청소년 영화교육은 아니지만 여성영화인에 대한 지원의 폭이 넓은 것도 AFI의 장점이다. 현재 AFI가 핵심적으로 운영하는 Directing Workshop (DWW)은 전문여성영화인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5년 이상 영화/영상/미디어/방송 등의 경력이 있는 여성지원자에게 AFI의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단 수업료는 없으나 단편영화 제작 시 필요한 프로젝트 자금은 공개피칭 및 제작지원 시스템을 통해 개인이 준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앞으로의 영화교육에 대해 생각해볼 문제
앞으로 대한민국의 영화교육은 어떤 방안을 고민해야 할까.
위에서 본 영국 BFI와 AFI의 사례를 통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지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교육운영의 핵심 기관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아르떼나 지역문화재단, 미디어센터 등은 다양한 장르의 교육들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교육 자체에 대한 집중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많은 영화선생님들의 노력으로 현재까지 영화교육이 발전해왔지만 일부에서는 오히려 이를 비판의 요소로 삼기도 한다. 교육의 산발성 즉 획일성의 문제, 강사 각자의 재량에 의존하는 커리큘럼, 강사풀 운영의 불안정성 등이 그것이다. 실제 근 2~3년간 아르떼가 조사한 학생 및 교사만족도 지표를 보면 타 예술장르수업에 비해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데, 그에 비해 다음 해에 영화교육을 신청하는 학교들은 오히려 조금씩 적어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영화의 교육적 효과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나, 교육프로그램 운용과 관련된 행정문제 및 콘트롤 타워의 부재가 주는 불안정성으로 인한 결과로 보인다. 즉, 흩어져 있는 영화교육 프로그램 및 성과를 모으고 이를 전문적으로 뒷받침 해줄 핵심기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영화교육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진행되기 힘든 사안이다. 영화교육의 교육적 효과가 논의되는 것과는 별개로 앞서 언급했듯 현재 영화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는 아마도 영화교육에 대한 교육현장의 요구에 비해 관련정보가 원활히 제공되지 않았음을 의미할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지금, 그 변화의 속도에 맞춰 영화교육연구도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핵심운영기관에 대한 논의 그리고 영화교육에 대한 다양한 홍보의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 그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앞으로도 영화교육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사담으로 시작했으니 사담으로 마무리 할까 한다. 지금 함께 지내는 고양이 ‘고다르’는 내가 첫 강사생활을 시작한 그 달, 나와 만났다. 고다르도 15살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영화선생님이 된 나와 영화감독 이름을 (감히) 따온 고양이는 여전히 불안한 교육시장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것도 15년씩이나! (이제는 좀 뜻을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1] 최상희, 영국 영화/미디어 공교육 시행 현황, 영화진흥위원회, 2017, 4~5, 8p. ▶ 자료 보기
[2] BFI 필름아카데미 홈페이지 https://www.bfi.org.uk/bfi-film-academy-opportunities-young-creatives
[3] AFI 홈페이지 https://conservatory.af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