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전미협 뉴스레터의 새로운 코오~너!
해외의 미디어·문화 환경이나 정책 등은 어떤 모습인지,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 조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어느 곳보다 오래된 역사와 풍부한 영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프랑스의 '작은 영화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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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작은 영화관들
전은정(프랑스파리 8대학 영화과 석사)
프랑스는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비롯해 수 많은 작은 영화관들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영화를 저렴한 비용으로 접할 수 있는 나라다. 영화를 문화유산으로 인식한 지 오래 된 프랑스에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영화관은 다른 예술 공연에 비해 접근성이 높으며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을 찾는 관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가 한 세기를 훌쩍 넘은 영화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워진다.
영화의 발생지인 프랑스는[1] 일찍부터 다양한 영화 육성에 힘을 쏟아 오고 있다. 이미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영화관 ‘스튜디오 유르술린’이 파리 대학가 라탱지구에 개관했다. 예술독립 영화 상영관의 시초라고 볼 수 있겠다. 이후 이 지역에서는 개성 있는 작은 영화관들이 속속히 들어서기 시작하고 오랫동안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스튜디오 유르술린느> (사진출처: 구글 지도)
그러나 프랑스 영화 시장도 시대의 흐름을 비껴가지는 못한다. 칸느 영화제가 새로운 영화의 발굴보다는 대 자본에 이끌려 상업화의 길로 들어섰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며 멀티플렉스의 확산으로 작은 영화관들이 위축되고 있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 등 비 상업적 영화 개봉에 중점을 두고 있는 작은 영화관들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트 중심의 멀티플렉스에게 관객을 뺏기는 것은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현실에서 매년 작은 영화관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이들에 대한 다양한 공공 지원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곳이 프랑스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최대한의 문화활동과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다방면으로 제공하는 프랑스의 전통인 ‘문화민주화’ 정신은 작은 영화관을 살리는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 영화수업이 의무교육으로
프랑스에서는 초등교육부터 고등학교 과정에 영화수업이 들어있다.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익히며 미래의 관객과 영상 예술가를 길러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유년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영화와 친숙해지고 이해함으로써 다양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키울 수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지인의 아이는 필자를 만나면 쉼 없이 영화수업 얘기를 하고 어떤 때는 은근히 시험을 하기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가끔 생각하지도 못한 그 아이의 기발한 관점에 놀랄 때가 있다. 영상을 읽고 자신만의 시각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적은 한국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아쉬워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영화가 하나의 소비품이 아닌 삶의 문화적 기반을 형성하도록 교육하고 있는 프랑스가 부러운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의 일부는 영화애호가인 시네필로 진화할 것이며 이들은 프랑스 영화를 받치는 한 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작은 영화관을 위한 공적 지원
프랑스에서 독립영화, 예술영화들의 대부분은 예술 및 실험 영화관에서 개봉한다. 수익성이 낮은 영화들이 예술 및 실험 영화관에서 지속적으로 상영될 수 있는 것은 정책적 지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 영화관들의 공적,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가능한 것으로 이들이 멀티플렉스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다.
프랑스는 2000년 대 이후 연간 극장 관객수는 감소 추세지만 꾸준히 2억 명 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스 오피스의 상위권은 대부분 헐리우드 영화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미국영화와 프랑스 영화를 찾는 관객 수는 반반 정도다. 개봉 수량 면에서 프랑스 영화가 두 배 이상 많은 상황을 고려하면 프랑스에서도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대형상업영화가 대세이긴 하다.
프랑스의 극장은 3대 배급사(UGC, 고몽-파테, CGR)가 전체 개봉관의 약 1/3을 차지하고 연간 관객 수는 50%선이지만 비싼 티켓 비용으로 시장점유율은 80%에 달한다. 이 외에 독립예술영화 배급사로서는 MK2가 자신만의 복합형 극장을 보유하고 있다. MK2는 홍상수 감독을 비롯해 작가주의 예술영화를 주로 배급하고 있으며 극장에는 카페, 레스토랑 그리고 DVD와 영화서적, 영화 소품을 판매하는 매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도 대형 배급사 쏠림현상을 피해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분야별로 특화된 배급사들이 대형 배급사와의 제휴나 부가 활동을 통해 수익 확대에 힘쓰고 있다.
프랑스에서 작은 영화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유지하는 중심에는 예술 및 실험 영화관 협회(association française des cinéma et d’essai)가 있다.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상업영화가 탄생한 후 육십 년이 지난 1955년, 프랑스에서는 예술 및 실험 영화관 협회가 출범하고 이후 국제 독립영화극장운동의 선봉에 서게 된다. 처음에 몇몇 비평가들과 파리의 극장주들이 시작한 작은 움직임에 불과했지만 1959년 정부에 의해 공식 협회로 인준되면서 독립 예술영화관들의 버팀목이 된다. 이를 주도했던 사람이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작가 앙드레 말로다.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은 확실한 재정적 지원을 의미한다. 수익성이 낮을지라도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선보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이다. 이 협회에 소속된 작은 영화관들은 대형 영화관에 걸리지 않는 국내 및 국외의 고전영화, 작가주의영화,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한다. 전통적 상영프로그램을 거부하고 다양한 영화를 선보이면서 영화에 대한 인식전환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 영화사에 족적을 남긴 60년대 프랑스 누벨바그의 감독들에게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현재 예술 및 실험 영화관은 프랑스 전역 130개 지역 1200여개의 극장에 240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있다. 각 영화관들은 지역의 특성을 살리고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감독이나 배우, 영화관계자와의 만남을 추진하기도 하며 평론가와 함께 하는 영화관 씨네 클럽이 운영되는 곳도 많다. 영화 외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해 소통의 자리를 늘리면서 관객층을 두텁게 하는 것이다.
● 예술 및 실험 영화관에서 동네 영화관까지
예술 및 실험 영화관이 다양한 영화 관람을 제공하는 만큼 중요한 또 하나는 이웃에 있는 가까운 영화관이라는 점이다. 문화생활의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는 영화관인 것이다. 파리로의 문화 집중을 순화시키고 지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문화 민주화 정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파리 시내 대학가 중심으로 작은 예술영화관들이 밀집해 있다면 외곽지역에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이러한 작은 영화관들이 많다. 멀티플렉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알차다. 공공자금의 지원을 받으니 비용도 저렴한 편이다. 지역 영화관들은 더 많은 시민들이 더 많은 문화생활을 공유하기 위한 하나의 공간으로 역할 지워진다. 동네 영화관이 지역에 활력을 불러 일으키고 지역민들의 소통의 장을 마련해 준다.
이 중에서도 파리 동남쪽에 위치한 '멜리에스' 극장은 영화인과의 만남은 물론이며 식당과 카페 그리고 작은 도서관도 겸비하고 영화소식지도 내고 있다. 또한 이 극장의 자체 영화제와 함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고전영화 재상영 그리고 지역 학교와 연계해 영화교육에 동참하기도 한다. 필자에겐 이 영화관이 아파찻퐁 위라세타쿤, 왕 빙 등을 만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장소 중 하나다.
<르 멜리에스 영화관> (사진 출처: 구글 지도)
이와 같이 작은 영화관의 활성화에는 영화인들의 지원도 빠질 수 없다. 감독, 제작자, 스태프 등과의 만남은 대부분 작은 영화관에서 이루어진다. 감독과의 만남이 있는 날이면 작은 영화관은 여지 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서두르지 않으면 영화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비 내리는 스산한 겨울, 파리 외곽 극장에서 진행되는 감독과의 만남이 매진될지 몰랐던 필자는 느긋하게 극장을 찾았다가 입장을 하지 못하는 낭패를 겪기도 했다.
영화인들과 예술 및 독립 영화관의 관계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프랑스 독립영화의 대표적 감독 중 한 사람인 알랭 카발리에는 자신의 한 영화를 예술 및 실험 영화관 '생 앙드레 데 자르'에서만 유일하게 개봉하기도 했었다. 이 곳은 다큐멘터리와 실험 영화 등 독립영화 상영을 전담하면서 작가주의 감독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영화관 중의 하나다.
●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작은 영화관들
프랑스의 대형 배급사들이 2000년대 초에 도입한 영화 연간 정기권으로 영화에 대한 접근성은 높아진다. 멀티플렉스가 시작한 이 정기권은 매달 한화 약 25,000원을 내면 무제한으로 영화관람이 가능하다. 멀티플렉스의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작은 영화관이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무제한 영화관람 시스템이 관객의 입장에서는 반갑지만 장기적으로 영화의 다양성이 훼손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작은 영화관들은 대형 배급사들과 제휴하거나 독립영화관들의 상호협력으로 공동 영화패스 시스템을 갖추는 등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무엇보다 기존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외국영화와 다큐멘터리, 감독회고전, 고전 명작 등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정비하며 관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저녁이나 주말에는 소르본느 대학 주변에 밀집해 있는 작은 영화관들 앞 좁은 인도에는 자기만의 영화를 찾아 온 길게 줄을 선 관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몇몇 영화관들은 스크린 수도 적고 공간도 협소해 영화가 시작하기 5분 전에야 입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작은 영화관의 매력이기도 하다.
● 그리고 가까이 있는 영화 관련 시설들
프랑스의 영화문화에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독보적인 존재로 다양한 기획전이나 상영 프로그래밍으로 숨어 있는 독립예술 영화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또한 파리시의 지원을 받는 복합 영화공간 '포럼 데 이마쥬'는 파리의 중심부에 있는 대형 상가 안에 영화 전문 도서관과 함께 있다. 상영관을 갖춘 포럼 데 이마쥬는 독립예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자체 영화제도 열리고 있으며 실험 영화, 다큐멘터리 등 비 상업적인 영화 소개에 앞장서고 있다. 여기서 1분 거리에 파리 최대의 멀티플렉스 UGC가 있는 것도 흥미롭다. 지하철 환승역과 바로 연결되어 멀티플랙스로 향하던 누군가는 포럼 데 이마쥬로 발길을 옮길지도 모른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 <포럼 데 이마쥬> (사진출처: 홈페이지)
예술영화, 작가영화, 독립영화 상영관으로 '퐁피두 센터'도 빼 놓을 수 없다. 3월 말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열리기도 한다. 현대예술 전문 전시장이기도 한 퐁피두 센터는 풍성한 영화 관련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 아틀리에, 영화와 무용의 결합, 컨퍼런스 등 다양한 행사로 관람객과의 소통을 꾀하며 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작가 영화를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이렇듯 프랑스에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은 다양하며 예술 및 실험영화관 이용을 독려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이 또한 교육과정에서 습득된 문화인식과 사회적 연대 정신의 발로일 것이다.
필자가 프랑스 체류 동안 만난 프랑스인들은 모두가 자기만의 영화를 가지고 있으며 취향도 다양했다. 굳이 영화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영화에 대해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한다. 영화 자체에 대한 것에서부터 그들의 마음에 들어 온 영화와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비록 이 경험만으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아주 가까운 곳에 영화가 있고 그러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프랑스다.
작가의 개성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으로 관객들을 맞이하는 독립 영화제들이 공존하며 수십 년 째 영화사에 남는 고전영화들만 상영하거나 저 자본 영화, 예술영화 상영을 담당하는 작은 영화관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에 프랑스가 영화문화의 저력을 잃지 않고 있는 듯 하다.
[1]우리가 말하는 ‘영화’는1895년 12월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 지하에서 뤼미에르 형제의 10편의 단편이 유로로 상영되면서 시작되었다. 뤼미에르 형제 이전에도 움직이는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장치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지만 대중들이 표를 사고 함께 관람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