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미디어센터, 참으로 “시의적절” 하다!
박민욱(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
미디어센터가 등장한지도 어느덧 2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정말 우여곡절도 많았고 안타까운 순간도 많았으며 가슴 뿌듯한 경험도 많았습니다. 그 모든 곡절과 순간과 경험들을 거쳐 우리는 지역 내에 뿌리내리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전국 각지의 미디어센터들과 각 센터를 둘러싸고 사랑하고 지키는 주민/공동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무려 20여년이 지나도록, 도대체 미디어센터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하는 곳이고, 어떤 사회적 가치가 있는 곳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히 있지만,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적어도 어떤 미디어센터가 훌륭한 미디어센터인가는 차츰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결국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과 “주민/공동체의 지지와 애정”이 미디어센터의 힘이며 결실이고 그 목표라는 것을 말입니다.
위의 이 두 가지 목표를 염두에 둔다면 미디어센터를 둘러싼 정체성 논란도 어느 정도는 정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디어’라는 단어가 태생적으로 워낙 많은 것들을 포괄하고 있고, 그러다보니 미디어센터는 필연적으로 그만큼이나 많은 분야와 연계하여 사업들을 진행하고 매우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여 왔습니다. 미디어센터는 영화와도 친밀하고 방송과도 연관이 있으며 생활문화시설 같기도 하면서 지역 미디어 산업을 진흥하는 곳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장 큰 오해는 단지 미디어 교육 시설이라거나, 혹은 미디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통념입니다. 사실, 이 모든 말은 정답이면서 또한 정답이 아니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하여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명확히 이해되지 못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이 그동안 미디어센터에는 있었습니다.
● 미디어센터의 목표1: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
이런 오해와 억울함에는 미디어센터들 저마다 탄생 배경이 상이하고 설립, 운영 주체가 제각각이며 지역적 특성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도 그 주된 이유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동일한 사업을 수행하면서도 각 센터마다 그 성과지표나 사업의 목표, 방향이 다른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센터는 그 특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동소이한 사업들을 수행하면서도 각 미디어센터는 각자의 탄생 배경에 따라, 혹은 지역적 특성에 따라 그 사업들을 의미화 하는 방식을 개성 있고 각각 다르게 가지고 가고 지역의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들을 보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자칫 미디어센터가 통일성이 없어 보이는 탓에, 미디어센터의 정체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논란을 가져올 수는 있었을 지언정, 미디어센터의 목표인 “지역에 뿌리내리는 것”에는 오히려 큰 장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미디어의 가공할만한 발전으로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먼 나라의 작은 뉴스도 곧장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흥미진진한 미디어 때문에 오히려 이웃 간은 점점 멀어지고 우리 지역, 동네의 작은 뉴스는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거나 금방 묻혀버리는 시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른 문제가 적지 않기에, 우리는 다시 우리가 함께 살 부딪히고 살아가는 존재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이웃이고, 우리의 삶의 터전은 바로 내가 사는 지역, 동네라는 사실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지역성’을 강조하는 요즘의 화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은 저마다 특색이 있으며 같은 현상도 지역마다 다르게 의미화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지역 사업은 반드시 지역의 상황에 맞춰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미디어센터는 지난 시간동안 진작부터, 지역성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기 전부터, ‘미디어’의 폭넓은 범위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속에 지역적 특성을 빠르게 반영하며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해 힘써왔다는 점에서 참으로 “시의적절한” 기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시의적절하다: 지역분권의 시대
이제 미디어센터는 이러한 특장점을 보다 더욱 살려서 철저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밀착형 미디어센터로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지역을 좀 더 연구하고 지역 내의 여러 환경을 분석하여 지역에 가장 필요하고 알맞은 사업을 개발,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미디어센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며, 대도시의 경우 구 단위 미디어센터가 지어지거나 인구 10만 이하의 군 단위 미디어센터도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좀 더 규모가 작고 사업구역이 세밀해질수록 그 지역적 특성은 좀 더 명확하며 구체적인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이에 맞는 지역밀착형 미디어센터의 모델도 시급히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한 역으로 지역미디어센터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광역별/권역별로 미디어센터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 역할도 커지고 있습니다. 미디어센터는 갈수록 지역으로 들어가고 지역에 뿌리내릴 것이며 당연히도 그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지자체의 역할과 의무 역시 커질 것입니다. 지역미디어센터는 광역별/권역별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상시적인 상호소통을 통해 필요한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개별의 성과와 가치를 취합하고 종합적으로 드러내어 지자체의 역할과 의무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요구해야 합니다. 최근 경기미디어센터네트워크의 힘으로 경기도로부터 연간 4억의 운영지원예산을 확보하고 경기도 차원의 미디어센터지원 조례가 제정된 사례는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미디어센터의 목표2: 주민/공동체의 지지와 애정
이렇게 미디어센터가 지역에 뿌리내리면 그 필연적 결과로서 “주민/공동체의 지지와 애정”이 따라오게 됩니다. 혹은, “주민/공동체의 지지와 애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지역미디어센터는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미디어센터는 지역을 기반으로 사고하고 사업을 수행하되, 지역을 지리적, 물리적 공간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미디어센터는 지역 내 주민/공동체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주민/공동체가 자유롭게 원하는 미디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열려있어야 하며, 주민/공동체가 미디어를 활용하여 활동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연계하고 확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주민들이 센터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 의견을 상시 개진할 수 있는 주민주도형 운영 방식이 필요합니다. 또한, 시설 자체가 개방형이어야 함은 물론, 주민들이 원하는 미디어 활동을 직접 제안하고 직접 수행하는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미디어 활동이 그 안에만 갇히지 않도록, 보다 다양한 주민/공동체가 미디어를 활용하여 사회에 참여하고 지역 공론의 장을 열고 지자체 및 유관 기관/단체와 연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래서 시의적절하다: 미디어의 가공할만한 발전
미디어센터는 지역밀착형 기관으로서도 시의적절하지만, ‘미디어’ 전문 기관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시의적절” 합니다. 미디어의 가공할만한 발전으로 사람들은 더 다양한 삶과 더 넒은 사회를 관찰하고 시시각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 삶을 살고 있으며, 이것은 특정 누군가에게만 주어진 ‘능력’이나 ‘권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보편화 된 것이고, 이제는 누구나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아니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나 많은 정보가 그 질과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우르르 쏟아지고 있고, 한번 퍼지게 된 정보는 한 순간에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회 구석구석까지 도달해버리고 맙니다. 시시각각으로 주고받는 미디어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사람들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으나, 주고받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미디어의 일방향성은 생각보다 좀처럼 개선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미디어를 활용할 수는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활용 ‘능력’을 소유하고 소통의 ‘권리’를 누리는 데 있어서 여전히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으며, 누구나 미디어를 활용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결국 그만큼 사회에 도태되고 마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미디어’는 ‘지역성’ 만큼이나 시대의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센터는 주민/공동체 누구나 미디어를 활용하는 ‘능력’을 보편적으로 소유하도록 돕고, 소통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주민/공동체의 지지와 애정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미디어의 가공할만한 확장성과 속도에 따른 문제에 대한 대응과 전략을 미디어센터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강화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역시 과거의 수동적(‘주류미디어 비판적 읽기’, ‘인터넷 윤리교육’ 등) 접근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미디어 생산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디지털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역량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또한, 미디어의 무한한 확장성에도 불구하고 세대별, 계층별로 고립되어 가는 현재의 기형적인 미디어 격차 현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미디어의 발전으로 ‘독립미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즉 스스로 미디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널리 퍼뜨리는 것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습니다. 미디어센터는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세대별, 계층별로 혹은 지역별, 공동체별로 각각의 미디어 활용능력을 증진할 수 있는 개별 방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개발, 수행해야 합니다. 제작과정이 복잡한 VJ물, 다큐멘터리, 극영화 제작 지원 중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으며, 라디오/영상스튜디오, 1인 창작시설, 뉴미디어 등을 활용하여 누구나 좀 더 쉽게 제작에 참여하고, 단순 출연/기고 개념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대폭 늘려 지역 내 저변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이렇게 제작된 콘텐츠가 지역 내 소통 공간 및 공론의 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역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가능한 수준의 유통 통로 (인터넷 방송, 팟캐스트, SNS,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지역케이블방송, 공동체라디오, 공동체상영 등)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며, 일상적이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미디어 활동 프로그램이 주민 주도로 조직적으로 수행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 우리에게는 "계획이 있다."
‘지역성’과 ‘미디어’가 시대의 화두임은 이제 부정할 수 없으며, 당장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미디어센터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과 요구에 가장 “시의적절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갑작스럽게 시작하거나 변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동안 꾸준히 이러한 흐름을 준비해 왔으며, 우리에게는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 미디어센터는 미디어의 다양성과 지역 저마다의 특성을 고려한 사업을 유연하게 배치하고, 광역별/권역별 미디어센터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지자체의 역할과 의무를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요구해야 합니다. 또한, 미디어를 직접 활용하여 소통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날로 증가되는 현 시점에, 미디어센터는 주민/공동체 누구나 미디어를 활용하는 ‘능력’을 보편적으로 소유하도록 돕고 소통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함으로써 주민/공동체의 지지와 애정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센터 자체가 주민주도로 운영되고 지역 네트워크와 긴밀히 연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