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대면활동의 감소, OTT 플랫폼의 발전, 콘텐츠 소비형태의 변화 등등, 그 어느때보다 영상/영화문화의 지형이 급변하는 시기입니다.
극장에서 함께 모여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단관극장을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굳게 닫혀있던 극장 문을 열고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피, 땀, 눈물(?)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과 공동체를 위한 역사적 공간을 보존하는 것, 제한적이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아카데미극장의 다음 STEP을 계속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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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아카데미극장 – 지역에서 극장을 보존한다는 것>
한누리(원주영상미디어센터)
1. 왜 사라진다고 하면 더 소중하게 느껴질까요?
원주에 남아있는 단관극장은 ‘아카데미극장’이 유일합니다.
원주 사람들이 C도로(일명 시네마로드)라고 부르는 도로에는 1956년 원주극장을 시작으로 시공관, 아카데미극장, 문화극장이 차례대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자리에 있었던 군인극장까지, 총 5개의 단관극장이 시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독특한 형태였죠.
하지만 2006년, 40년 넘는 내공이 쌓여있던 단관극장들은 신생 멀티플렉스 극장 하나에 일제히 문을 닫았습니다. 당시의 저는 ‘원주에도 드디어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긴다’는 소식에 내심 좋아했었고, 이전 것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순리처럼 느껴졌습니다.
2015년 말 문화극장이 철거되면서,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변해원 국장님을 포함한 원주의 시민들이 모여 하나 남은 아카데미극장이라도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아카데미극장 보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아카데미극장 보존활동은 2016년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아카데미극장 보존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모집하고, 단관극장과 관련된 사연, 단관극장에서 개봉했던 영화 포스터를 수집하여 전시하기도 하고, 아카데미극장의 미래를 상상하는 시간들도 가졌습니다.
또한 단관극장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씨도로>(감독 이민엽), 극영화 <꿈의 공장>(감독 김정승) 제작과 더불어, 단관극장 역사자료 전시회, 아카데미극장 보전과 활용방안에 대한 시민 설문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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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올해 <안녕 아카데미> 사업을 진행합니다. 현 소유주의 협조로 처음으로 아카데미극장 안에서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센터 직원들이 의기투합하여 사업에 투입되었습니다.
2. 다시 만나 반가워, 아카데미
극장 안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설렘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짐들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14년 묵은 먼지와 쓰레기는 기본이고, 전기도 물도 나오지 않는 그야말로 멈춰있는 공간이었죠.
당시 아카데미극장 소유주였던 ‘정운학 옹’은 C도로에 있는 단관극장을 모두 운영했었는데, 그중 아카데미극장에 소유주 가족들이 살았던 살림집과 정원이 있었습니다.
좌석 수가 660석이 넘는 큰 상영관, 필름영사기 두 대가 놓여있던 영사실, 늦은 밤 쪽잠을 잘 수 있었던 매표소, 잉어를 키우던 커다란 수조, 4개 단관극장의 포스터가 보관되었던 창고,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와 담배를 피울 수 있었던 테라스까지, 극장 곳곳에서 버릴 것과 전시할 물건들을 분류하고 청소하는 작업이 오래도록 진행되었습니다. (올여름, 스태프들의 키워드는 ‘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스태프뿐 아니라 아카데미극장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초청해 함께 청소하는 날을 가졌습니다.
당시 관객으로 왔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공간을 보게 되고, 그 옛날 극장에서 쓰던 도장, 영사기 부품, 램프, 빈티지가 되어버린 그릇 등 예상치 못한 물건들을 발견할 때마다 ‘이것 좀 보라며’ 수차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면서요.
시간과 역량 부족으로 포기했던 필름영사기 조립은, 몇몇 시민들이 영사기 구조를 공부해가며 합께 조립을 해놓았습니다. 영사기 한 대는 아직도 작동이 잘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흔적이 생겨나고, 전 그들이 내뿜는 애정에 전염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카데미극장 옆길에는 5일장이 열리고, 정문 앞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어 늘 사람들이 붐빕니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극장이 정리되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껴지니,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들어와서 구경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곳이 꼭 보존됐으면 좋겠다"
"예전에 여기서 졸업식을 했었다"
"여기서 이 영화도 보고 저 영화도 봤다"
"여기서 예전에 영사기사로 일했었다..."
물어보지도 않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해 새삼 느낍니다. 이곳은 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곳이고, 여러 사람들이 곁에 두고 다시 열리길 바라는 곳이란걸요.
이쯤에서 <안녕 아카데미> 행사에 대한 소개를 해봅니다. <안녕 아카데미>는 아카데미극장이 재개관 된다면 운영해볼 만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해보는 시범 사업으로 8~9월에 진행 예정이었습니다.
다행히 8월 행사는 무사히 마쳤지만, 원주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9월 행사는 11월로 미뤄진 상태입니다. 온라인 행사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아카데미극장 ‘공간’을 빼놓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관객 규모를 축소해 오프라인 위주로 진행하고 온라인 중계를 부분적으로 병행하기로 했습니다.
8월 행사에서는 시민들에게 극장을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스태프들이 시민들에게 내부 공간을 소개하고, 지역 영화 애호가, 건축가와 함께하는 스페셜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라이브 드로잉 화가를 초청해 극장 출입구에 변화를 주고, 지역 프로듀서가 아카데미극장을 추억하는 뮤지션들을 초청해 극장에서 녹음 작업을 하여 옴니버스 앨범도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아카데미극장에서 근무했던 화가를 초청해 <빽 투 더 퓨쳐> 간판을 시민들과 함께 그려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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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행사에서는 극장 맵핑 퍼포먼스, 무성영화 라이브 콘서트, 감독초청 상영회, 심야 상영회, 지역 극단의 연극 공연, 음악 공연, 작가 초청 북토크, 그림책 제작과 실크스크린 포스터 체험을 진행합니다.
극장 복도 한 곳에는 서점 풀무질의 전범선 대표가, 다른 한 곳에는 원주에서 활동하는 독립출판 작가들이 큐레이션 한 책들로 채워, 방문객들이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녕 아카데미> SNS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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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난방기가 없어 찾아오는 분들이 덥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추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11월에 <안녕 아카데미> 행사를 무사히 치르고, 내년 봄이 오면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진행해보려 합니다. 이번 행사는 하나의 제안인 것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시도들을 해보면서 아카데미극장에 잘 맞는 색을 찾아가야겠죠.
3. 극장 다시 열어요? 아직 몰라요
“극장 다시 여는 거예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입니다.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다시 열기 위해 여러 단체와 시민들이 애쓰고 있고, 올해는 시범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구구절절 설명이 이어집니다.
작년에는 아카데미극장이 철거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올해 4월, 원주시와 현 소유주 간 아카데미극장 매매 협약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문화재청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되는 조건으로 소유주는 등록문화재 지정에 동의하고,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을 매입한다는 내용입니다. 문화재청 사업에 선정된다면, 원주시에서 아카데미극장을 매입하는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극장은 한 번의 화재도 없이 단관극장 원형 그대로를 유지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보존할 가치가 충분한 원주의 유산인 것이죠.
당시 아카데미극장은 영화 관람뿐만 아니라 공연, 강연, 졸업식, 시민노래자랑 등 사람들의 생활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곳입니다. 원주시민들의 가장 큰 문화공간이자 커뮤니티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이곳이 다시 예전처럼 문화예술 활동의 장이 될 수 있길, 상영회와 각종 공연과 강연이 열리고, 교류가 이어지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탄생되길 기대합니다. 물론! 아카데미극장이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이런 문화커뮤니티의 장을 되살리는 활동에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동참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센터 활동에서 보다 시선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업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4. 안녕! 오늘도 내일도 매일 반갑게 나누는 인사, “안녕”이 되기를...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콜럼버스>(2017)를 보셨나요?
콜럼버스는 미국에 있는 도시로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라고 합니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을 만나게 되면서 관심도 없던 콜럼버스의 건축물에 대해 알게 되고,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힘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의 영향으로 건물에 새로운 의미가 생긴 겁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대상이 어느 순간 특별하게 느껴지는 경험은 누구나 있을 텐데요.
영화에서는 “모든 게 엉망인 그 순간, 평생을 지낸 이곳이 갑자기 달라 보였어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처럼요.”란 대사가 나옵니다. 요즘 저에게도 오랜 시간 곁에 있었던 아카데미극장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에 대해 잘 알아야 그 사람에 대한 진짜 애정이 생기게 되죠.
아카데미극장에 기웃기웃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아카데미극장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의 아이디어와 기대를 담을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 반갑게 나누는 인사, “안녕”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아카데미극장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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