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의 풍경은 이제 익숙해진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 너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일터에서의 업무환경이 변하고, 사람 간 만남의 방식도 변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혐오의 단어들은 '이런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무마되거나 정당화되곤 합니다.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는 그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 흔들리지 않고 고수해야 할 역할과 가치를 다시금 살피는 것은 중요할 것입니다.
이번 호 <미디어센터 이슈>에서는 코로나19로 "바뀌어버린" 미디어센터 풍경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한 센터의 활동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보편적인 권리로서 누구나 장벽없이 미디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언제나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활동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 '재난'과도 같은 이 시기에 더욱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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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 지역과 함께 하는 서천미디어센터만의 언택트 활동
윤혜숙(서천군미디어센터기벌포영화관 사무국장)
지역민과 밀착된 서비스 단절이 주는 두려움
코로나19 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때인 3월은 미디어센터 뿐 아니라 일반 회사도 올해 계획된 사업들을 막 시작하려고 준비하려던 때였다. 서천미디어센터도 주력 사업으로 진행하던 ‘찾아가는 영화관/장수사진’, ‘어르신추억영상만들기’, ‘마을추억만들기’ 등 기관 또는마을과 함께 하는 사업들을 협의하고 확정짓던 시기였고 올해 초에 구비 완료된 고화질의 프로젝터, 에어스크린과 스피커로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서천군의 13개 읍면을 다니면서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야외영화상영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시작되고 미디어센터와 영화관이 무기한 휴관에 들어가면서 마음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미디어센터와 기벌포영화관을 찾는 주 이용객은 서천군민들이기 때문에, 휴관이 길어지고 지역민들이 찾아오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센터와 영화관은 지역민들의 마음에서 멀어지고 잊히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에 지역민들로 구성된 영화 동아리와 함께 중단편 영화를 제작하면서 갖게 된 유대감을 올해에 더욱 밀착시켜서 동아리 내에서 영화, 영상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비대면 활동 전환으로 서천미디어센터도 다른 방법들을 찾아야만 했다
서천센터만의 언택트 활동 시작
서천군 지역 밴드를 활용한 작은 이벤트 시작
기벌포영화관 개관 이후 약 5년 동안 미디어센터와 영화관의 주 이용객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이중 ‘충성 고객’들도 상당수 차지한다. 비록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지만 지역민들과 함께 한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지역 네이버밴드와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등 SNS를 통해서 매주 또는 격주로 작은 이벤트를 열었다. 가령, “기벌포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꼽아주세요” 라든가 “나만의 슬기로운 집콕 생활” 등을 소개해주는 분들 중 선정해서 영화관 관람권 또는 매점 이용권을 선물로 증정했다. 지역민들에게 받았던 관심을 다시 돌려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무기한 휴관으로 인해 센터와 영화관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컸다.
지역 내 평생교육센터에서 평생교육 강사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강의를 위한 동영상 촬영법을 유튜브를 통해서 알려줄 수 있는지 문의가 왔을 때, 그 부분에 대해 도움을 드리고 이후 여건이 됐을 때 오프라인 교육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리고 지역 기관에서 자체 체험프로그램의 동영상 촬영 도움을 요청했을 때 등 지역 미디어센터의 역할이 어려움 속에서 빛을 발하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영화에 목마른 지역민들을 위한 자동차극장 시작
가까운 곳에서, 항상 영화를 볼 수 있다가 갑자기 전혀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영화를 자주 보지 않던 사람들도 갑갑함을 느낀다. 강제로 영화 관람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서 영화관과 미디어센터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지역 밴드에 영화를 좀 틀어주면 안되는지, 안된다면 야외 상영은 안 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야외상영을 자동차 극장으로 하자는 제안을 팀원이 했을 때 가장 안전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실행에 옮겼다.
센터가 갖고 있는 야외상영 장비로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우선 자동차 30대 정도가 들고 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찾아야했고 그 공간은 군청이 관리하는 공공시설이어야 했다.(공공시설에서의 무료 영화 상영이 상대적으로 영화상영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전 직원들이 서천군이 관리하는 야외공간들을 알아보던 중에 서천군 금강하굿둑 인근에 자동차극장 시설을 군에서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침 이 자동차극장은 2년 전에 폐업을 했고 상영 스크린을 철거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갖고 있던 에어스크린(300인치)은 자동차 안에서 영화를 보기에는 너무 작았다. 자동차극장 시설 관리 담당자와 협의를 해서 2주간 매주 금, 토 상영을 결정했다. 영화 상영 장소가 결정되자 마음은 한결 놓였고 이제는 사운드 주파수를 전파진흥원를 통해 승인 허가 받아야 했다. 대전 전파관리소에 문의한 결과 현재까지 자동차극장 전파는 미약전파로 승인허가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허가 대상이 아니라는 좀 이상한 답을 들었다. 그래서 허가 받지 않고 주파수를 사용해서 영화를 틀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다음날 대전 전파관리소 측에서 이번 코로나19로 사태로 문화행사에 한해서 바로 전파 승인을 해주는 것으로 주무부처에서 연락이 왔다면서 서천에서 자동차극장 주파수를 바로 내주겠다고 했다.
자동차극장을 시작할 때 체크해야할 것들이 있는데 먼저 저작권법에서 저작권자의 이용허락을 받지 않고 영화 등의 영상을 상영할 수 있는 조건들을 찾아봐야 한다. 그 모든 조건들이 다 갖춰져야만 법적인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센터와 동시에 자동차극장을 했던 인근 지역의 경우 용역을 준 사업자가 해당 문예회관 예매사이트에서 수수료 1,000원을 받아서 해당 영화의 상영권을 위임받은 영화배급업자로부터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두 번째는 전파사용 승인 허가다. 이 부분은 지역 센터들에서 미니FM을 통한 야외라디오방송 경험이 있어서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동차극장을 이용하는 관객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몇 가지 사항들이다. 자동차 라이트 등을 전부 소등해야 하는데 최근에 나온 자동차는 시동을 완전히 꺼야만 소등이 되는 차량이 있어서 별도의 라이트 가림막이 필요하는 등 몇 가지 지켜야 할 사항들이 있다.
이렇게 시작된 자동차극장은 첫날 30대 한정으로 시작해 인근 군산 지역에서도 영화를 보러 왔으며 특히 마지막 날 상영작이었던 영화 <알라딘>의 경우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가족 단위로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차량이 40대가 넘었다.
자동차극장은 1980년대 이후 일명 ‘마이카’시대가 되면서 1990년도 초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새로운 영화 관람 환경이다. 주로 젊은 연인들이 이용하는 곳이었고 2000년대 들어서서 서서히 없어지고 있던 영화관람 형태였는데 이번 코로나19로 다시금 재조명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이번에 주 관람객층은 가족단위가 많았다. 가족들은 차 안에서 마스크를 벗고 싸온 음식을 먹으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바로 나누거나 뮤지컬 영화의 경우 함께 따라 부르기도 하는 등 피크닉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자동차극장을 이용한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갑갑한 일상을 잠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학교를 가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으며 이미 사라진 자동차극장을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생활미디어사업으로 시작한 ‘내일은 트롯가수!’ 프로그램 시작
다른 미디어센터들에서 하고 있는 생활미디어사업을 우리도 해보자는 생각에 올해 초에 서천군민제안프로그램에 신청했던 ‘나만의 이야기로 만드는 나만의 노래’ 수업을 진행했다. 휴관과 안전 문제로 상반기에 하고 있지 못하다가 7월부터 인원을 나눠서 1기와 2기로 진행하기로 하면서 지금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트로트 열풍을 우리도 가져다가 트로트 노래에 가사를 다시 만드는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공개모집 강좌를 열 때마다 수강생이 다 모이지 않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이 군단위 미디어센터들은 다들 갖고 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코로나19로 인해서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모집정원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그러나 재미있고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있기를 바랐는데 마침 트로트 노래로 하자는 팀원의 제안이 있어서 가능했다. 트로트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가장 대중적인 음악 장르이고 대부분 트로트 노래 가사들은 삶을 솔직하게 말하는 내용들이 많아서 호응을 많이 받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교육을 어떤 사람들은 노래교실로 착각해서 꼭 듣고 싶다고 하신 분들도 많았다. 갑갑한 일상으로 취미생활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맘껏 노래라도 불러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던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언택트 시대에 지역 미디어센터의 고민
직접 만나지 않고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서 만나는 언택트 시대에 우리와 같은 ‘군’단위 미디어센터들의 활동 범위는 좁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초중고등학교는 미디어교육을 예전부터 해왔고 이번 상황을 계기로 자리를 잡아서 학생들과 교사들의 네트워크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10대와 20대를 제외한 50대 이상의 중장년과 노인층이 많은 서천센터의 경우 가장 중점적인 사업이 ‘찾아가는 시리즈’였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됐다. ‘찾아가는 시리즈’를 유지하면서 모이는 인원은 5명~10명 이내의 그룹별로 해서 요청이 있는 곳에 장비를 들고 가서 맞춤형 미디어교육, 상영 행사를 하면 되는지 등등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유튜브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1인미디어를 희망하는 지역민들도 많이 늘어났고 이들의 욕구를 서천센터가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고 엮어내야 할지도 고민이다. 이런 유튜브를 통해서 생겨난 1인미디어 영상제작 열풍이 마치 유행처럼 지나가버리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유튜브를 통해서 얼마든지 영상제작을 배울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은데 이를 다시 미디어센터에서 알려줘야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어떤 내용을 중심에 둬야하는지 등 미디어환경과 이용자의 변화에서 세부적인 사업 프로그램까지 복잡하게 다가오고 있다. 전통적인 올드 플랫폼인 영화, 극장에 익숙한 나에게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체감되는 시기이지만 지역에 자리 잡은 미디어센터는 이런 언택트 시대일지라도 결국 지역민들과, 지역과 단절되지 않도록 연결 고리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