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BIFF를 시작으로, 전국의 영화문화 활동가, 단체 등이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이름으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간 가벼운 회의로, 포럼으로, 토론회로 쌓아간 논의들을 모아 지난 6월 18일에는 <커뮤니티 시네마 네트워크 2020> 포럼이 열렸는데요. 지역과 공간, 공동체와 영상문화활동을 아우르며 '전국커뮤니티시네마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 설립과 향후 활동 방향까지 가늠해 보는 자리였습니다.
각자 활동과 방향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공감대를 만들어 가며 커뮤니티 시네마의 미래를 같이 그려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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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객, 그리고 지역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커뮤니티 시네마’
김남훈(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이사장)
지난 6월 18일 서울의 상징적인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전국의 다양한 영화문화활동 단체와 활동가들이 모여 각각 이어 온 지역별 활동을 소개하고 상호 거래와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 위한 포럼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엔 전국의 영화문화활동가 약 80여명이 모였고 전국 활동 주체 간의 연대체인 ‘전국커뮤니티시네마네트워크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 취지와 향후 국내 ‘커뮤니티 시네마’의 활동 방향 등이 소개 되었다.
이날 포럼은 작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첫 번째 모임을 시작으로 각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화문화활동을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보편적 개념으로 수용하기로 한 지 8개월 만이었고 그 사이 추가로 개최된 두 차례 포럼의 마지막 이야기장이었다.
커뮤니티시네마 네트워크 2020 포럼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개념은 듣는 사람에 따라 창의적인 해석이 필요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2000년 초중반부터 이어진 지역문화활동의 개선방안으로 연착된 「지역문화진흥법」과 「문화기본법」의 흐름 속에 여러 지역에서 이뤄진 다양한 ‘커뮤니티’ 문화예술활동. 이를테면 ‘커뮤니티 아트’, ‘커뮤니티 디자인’, ‘커뮤니티 댄스’, ‘커뮤니티 비즈니스’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다 영화관객사에 집중하여 197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뤄진 ‘커뮤니티 시네마에 대한 프랑크푸르트 판결’, 또는 일본의 ‘커뮤니티시네마센터’라던가 영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다양한 정책 사례를 맥락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맥락 모두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영화와 관련한 문화적 활동, 또는 시민과 관객 주체의 영화 활동 등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흐름으로 과거부터 이어져 왔던 ‘관객운동’과는 차별성이 존재한다.
최근 오마이뉴스의 성하훈 기자는 국내 ‘관객문화사’ 및 ‘영화운동’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80년대를 기점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뤄진 영화동아리 활동, ‘문화학교서울’과 같은 동인적 성격의 관객운동, ‘장산곶매’와 같이 당대 사회적 운동과 결합되었던 창작 활동 등을 함께 조망해가고 있는데, 당대의 관객운동은 사실상 현재의 흐름과는 단절된 결말을 도출했다고 볼 수 있다. 관객운동을 주도하던 ‘문화학교서울’의 주축들은 국내 최초의 민간 시네마테크인 ‘서울아트시네마’의 설립을 주도했고 국내 독립영화산업의 주동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관객’이란 정체성은 모호해졌고, 사실상 90년대를 끝으로 그간 이어 온 관객운동의 흐름은 마무리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후 새로운 관객운동의 담론이 부재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80년대부터 이어 온 당대의 관객운동의 모토는 시네마테크 설립, 독립영화 등과 같이 영화계의 새로운 시도와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요구가 실제화 되었을 때, 그 다음으로 이어질 관객운동의 새로운 담론은 생산되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반복되는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 그리고 지역문화 분권이라는 새로운 아젠다를 바탕으로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이전과 다른 형태의 시민, 관객 운동이 파생되었다.
국내에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개념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00년대 중후반인데, 그 배경은 독립영화의 위기로부터였다. 당시 한국독립영화협회는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고 센터의 사업과 운영방안을 조사하던 중, 2003년 설립된 일본 ‘커뮤니티시네마센터’ 사업을 참고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당시 진행하던 ‘독립영화배급지원센터’ 사업은 백지화 되었으며 참고로 삼았던 일본의 커뮤니티시네마 사례들은 실제로 적용해야 할 독립영화의 자립 롤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활동의 탄력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간 국내 독립영화전용관과 예술영화전용관이 설치되고 운영까지 이어졌던 오래된 정책과 민간의 협력 방식 전반에 관한 제고가 선행되어야 했고 무엇보다 독립영화인들에게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비롯한 정부의 실패와 민관 협력체계에서의 정부의 역할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리는 것이 우선해야 할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커뮤니티 시네마’에 대한 관심이나 요구는 그렇게 사라지는 듯 싶었으나, 뜻밖에도 이러한 요구는 영화계 바깥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이는 영화산업의 정책 부재 속에서 ‘지역문화’라는 새로운 정책이 유발되었던 여러 상황(「사회적기업육성법. 2010년」 제정, 「협동조합기본법, 2012년」 제정, 「지역문화진흥법, 2014년」 제정, 「문화기본법, 2017년」 제정)이 전개되면서 부터이다.
지역사회에서는 지자체 차원의 원도심 문화재생사업 및 사회적경제 영역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파생되었고 「지역문화진흥법」 제정 이후, 생활문화예술이 문화 정책의 핵심적 화두로 부각되면서 소수의 시네필과 영화인들이 주도하던 관객운동은 점차 일반시민과 문화활동가 및 단체를 중심으로 ‘커뮤니티 시네마’를 닮은 활동으로 전개 되었다.
2019 충무로영화축전 <커뮤니티 시네마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
과거의 관객운동의 핵심이 ‘영화’라는 예술장르의 미학적 담론을 발굴·형성하고 이를 공유·교육하는데에 있었다면, 커뮤니티 시네마에서의 활동은 영화를 매개로 지역적·사회적 이슈와 담론을 발굴하고 이를 생활 기반의 공동체성으로 전환하는 커뮤니티 활동에 보다 방점이 찍혀 있다. 따라서 다양한 마을공동체, 또는 지역문화사회단체들과 견고한 협력체계가 필요했다. 과거의 관객운동이 상향화된 예술적 가치와 산업적 목표를 지향했다면, 최근의 경향은 보다 작은 단위의 문화적 담론과 시민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성을 주목하고 있다.
2012년 부산 중구에서는 원도심 문화재생을 목적으로 예술가들과 행정이 결합하여 ‘또따또가’라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여기에 소속된 영화 마니아들은 중앙동 작은 길모퉁이에 조그만 상영공간 ‘모퉁이극장’을 개소한다. 2013년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모극장)의 주축들은 「협동조합기본법」 시행(2012. 12. 1)과 더불어 총회를 개최하고 공동체상영을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을 설립한다. 이 외에 전국의 다양한 지역(특히 원도심 지역)에서는 단편영화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영화상영공간이 파생되기 시작했고 또는 각 지역을 순회하는 방식의 로드쇼 상영을 주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작은 시도들의 누적은 앞서 강조한 것과 같이 시민과 관객을 중심으로 사회적 경제와 지역문화의 주요 이슈(원도심 문화재생)의 거버넌스 안에서 파급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 시네마’는 물리적 개념이 아닌 주체와 관계를 의미하는 활동 개념
커뮤니티 시네마라는 용어와 개념이 처음으로 공식화된 나라는 독일이다. 1960대 말 등장한 ‘뉴 저먼 시네마’와 함께 “새로운 영화를, 새로운 형식에서 본다”를 모토로 각 지역별로 비상설영화관 및 커뮤니티 기반의 상영운동이 이어졌고 지자체는 이런 활동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기존의 민간 상업영화관과의 갈등으로 이어졌고 1971년 프랑크프루트에서는 상업영화관이 커뮤니티 시네마와 지자체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법적분쟁에서 상업영화관이 패소하고 각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 시네마 활동이 이어지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2000년대를 지나면서 전세계적으로 대자본으로 인한 영화산업 내의 시장의 실패가 발생했고 커뮤니티 시네마는 이러한 시장 실패에 대응하여 지역의 문화권을 지키기 위한 대안적 활동으로 보다 부각되었다. 이는 지역사회와의 연대와 협력, 지자체와의 거버넌스 등을 통해 기존 영화의 예술 미학적 담론에서 지역사회의 이슈와 공동체성을 보다 주목하는 관객운동의 변화로 이어졌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0여개의 전국 영화문화 단체들이 모였을 때, 이중 스스로를 ‘커뮤니티 시네마’라고 지칭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활동에 있어 특정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지역사회연계’, ‘시민 및 관객 주도’, ‘사회적경제’ 라는 부분이다.
커뮤니티 시네마는 1차적으로 지역의 시민과 관객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내에서 부족한 문화적 상황들을 자발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영화문화 공동체이다. 그러나 시장의 영역에서 활동이 어려운 이들의 특성상,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사회, 지역운동과 연계하여 그 지속성을 살피게 되고 그 지속가능성의 조건에서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 조직으로서 활동을 이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커뮤니티 시네마의 발전은 지역문화의 새로운 활력을 견인해갈 수 있다는 조건 이외에도 각 지역 간 연대와 네트워킹을 통해 대안적 문화산업의 형식으로서 발전해갈 수 있다는 점도 있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BIFF <어크로스 더 시네마>
최근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코로나ing’로서 이 바이러스와 공존해야할 시기가 매우 길게 이어질 것임을 전망하고 있다. 많은 영화제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영화산업의 중심 역시 비대면을 중심으로 한 해체와 변화가 가속될 것으로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와중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대면’할 방법을 찾아내고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어떠한 대면 방식이 필요한지 잘 설명하고 있다. 밀집에서 분리로. 대규모에서 소규모로. 군중에서 신뢰를 바탕한 공동체로, 대면의 방식은 전환될 것이다.
커뮤니티 시네마는 공간의 규모나 물리적 조건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신뢰가 기반되는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한 영화활동의 관계와 주체를 뜻하는 것이며, 이는 공동의 요구로부터 발생한 지역사회와 지역문화의 공공성을 구성해가는 것이다.
□ 커뮤니티시네마 네트워크 2020 포럼 자료집 다운로드 ▶ 커뮤니티시네마네트워크_0618포럼_자료집.pdf
□ 관련 참고자료: 영화문화의 확장과 다양성을 키우는 지역 영화 커뮤니티를 위하여(정인선, <한국영화> 119호, 영화진흥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