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의 풍경은 이제 익숙해진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 너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일터에서의 업무환경이 변하고, 사람 간 만남의 방식도 변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혐오의 단어들은 '이런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무마되거나 정당화되곤 합니다.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는 그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 흔들리지 않고 고수해야 할 역할과 가치를 다시금 살피는 것은 중요할 것입니다.
이번 호 <미디어센터 이슈>에서는 코로나19로 "바뀌어버린" 미디어센터 풍경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한 센터의 활동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보편적인 권리로서 누구나 장벽없이 미디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언제나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활동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 '재난'과도 같은 이 시기에 더욱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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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기, 미디어교육의 '배리어프리'를 위하여
이경민(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
안녕하세요.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 이경민입니다.
기록적인 장마와 폭우가 지나고 대구는 살이 따끔할 정도의 강한 햇볕으로 연일 폭염경보의 안전안내문자를 받고 있습니다. 전국에 계시는 여러 센터 스태프분들은 정말 무사히. 잘. 지내고 계신지 안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네요.
○ 편리할수록,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개학을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는 학교는 비대면 수업을 시작했고, 접촉에 의한 감염을 우려하여 바깥 외출을 삼가던 사람들은 ‘방구석’에서 사회와의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새로운 트렌드가 편리함을 가지고 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모든 것이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 이용에 불편을 겪는 정보취약계층은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로 가속화된 온라인・비대면 서비스 환경은 이제 일상이 될 테지만 이를 누리지 못하는 디지털 약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 농청년 미디어교육 사례
3년간 계속되어 온 농아인 미디어교육의 인연으로, 올해 새롭게 농청년 미디어교육을 계획했습니다. 활동력 있는 농청년들이 기본 교육을 수료하고, 농아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갈 수 있는 영상을 지속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동아리를 꾸리는 것이 최종목표였습니다. 대면교육으로 계획되었던 이번 교육은 코로나19로 인해 계속 연기하다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청년들이니 쉽게 접근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대면 교육으로 우선 시작한 후 실제 제작이 진행되는 시기에는 대면교육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협의했습니다.
농청년 미디어교육 “농튜브 Flex"
- 대 상 : 대구농아인협회 부설 농아청년회 회원 20명
- 일 시 : 5~6월 (9차시/비대면교육), 7~8월 (6차시/대면교육)
- 교육방법 : 네이버밴드에 강의 녹화영상 업로드, 매시간 과제 제출
- 교육목표 : 농문화를 알리고, 농청년회의 활동을 기록・홍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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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자 교육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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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원하는 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 교육장까지 가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인데 이동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내용의 수업이라 신선했다.
(* 농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교육은 취업과 관련된 자격증 수업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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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는 (돌발상황이 많아) 집중하기 힘들었다.
- 궁금한 내용을 빨리 해결할 수 없었다.
- 과제가 많고, 타인과 공유하고 싶지 않아 제출하지 않았다.
- 오프라인보다 강제성이 없어 마음이 해이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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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청년 미디어교육은 내용면에서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대면교육이 고스란히 비대면으로 옮겨갔다는 교육의 형식이 변화했을 뿐입니다. 과정 수료인원이 50%정도에 그친 것을 보면 시·공간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긍정적 평가 외에는 딱히 비대면 수업이 매력이 없어 보입니다. 대면교육으로 계획된 교육이 별다른 수정과정 없이 비대면이라는 형식적 변화만을 꾀하면서 발생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온라인 컨텐츠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플랫폼과 시청자의 이용패턴에 맞는 짧은 시간, 큰 자막 등의 요소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업도 비슷한 형식을 띄어야하지 않을까요. 가정 내에 PC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나마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오랜 시간 수업을 듣기 때문에 당연히 집중력은 떨어지고, 실습화면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업을 담당하는 강사의 입장에서는 녹화된 강의영상을 제공하는 경우, 수업의 참여도를 파악하기 위해 매시간 설문지를 제공하거나 과제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우 참여자들은 수업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집니다. 때문에 실시간 화상교육을 선호하게 되지만, 농아인 수업의 경우에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화상교육의 참여자 수가 늘어날수록 작은 바둑판 모양의 배열 안에서 누가 지금 (수어로) 이야기하는지 파악하기 어렵고, 동시에 여러 명이 수어를 사용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정리하는 데만 꽤나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농아인 교육에서는 온라인 교육을 추천하지 않는 편이나, 지체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수업이라면 오히려 반응을 더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동의 불편함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영상제작보다는 필요한 자료를 찾거나, 블로그를 운영하고, SNS를 통한 캠페인 활동 등 인터넷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강좌를 기획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 답정너, 미디어교육의 탈피를 꿈꾸다 - 결혼이주민 미디어교육
식을 줄 모르는 유튜브의 인기를 보며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영상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클 것이라 막연히 추측했습니다. 유튜브가 대세다 보니 공모사업을 신청할 때도 선정이 될 확률이 높은 편이기도 하고요.
결혼이주민분들도 유튜브를 많이 보니까 당연히 영상제작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매년 교육을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참여 인원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상’이 아직은 유효하게 대중의 인기를 얻는 장르이긴 하지만, 영상 제작이 누구에게나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기술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늘 습관처럼 그래왔듯이 “영상문화의 향유”라고 하는 사고의 틀 속에서 참여자에게 강요한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혼이주민이 가장 원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며, 한국어를 익혀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모든 교육을 잠정 연기했음에도 이용자들의 요청으로 인해 한국어교실만은 온라인으로 재개되었습니다.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참여자들의 자발성입니다. 자발성은 자신이 그것을 ‘왜 배우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어야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결혼이주민이 가장 원하는 한국어교육을 미디어와 접목시켜보기로 했습니다.
결혼이주민 미디어교육 “뉴스로 배우는 한국, 그리고 세계”
- 대 상 : 대구 북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회원 15명
- 일 시 : 8월 10일 ~ 10월 12일 (매주 월요일, 10:00-12:00)
- 교육방법 : Zoom 활용 실시간 화상교육
- 교육목표 : 뉴스콘텐츠를 통해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단어를 익힌다.
최근 이슈와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작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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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같은 재난에 가까운 상황에서는 뉴스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고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쏟아집니다. 그 많은 정보 가운데 허위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 힘, 그리고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고 분석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어교육을 접목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결혼이주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 해봤으니 됐다!! 만나서 얘기하자 - 시니어 동아리활동
창단한지 3년이 된 시니어동아리 ‘청춘은 바로 지금’은 지난해 단편영화를 찍으며 온 몸을 불살랐습니다. 선선한 가을엔 노인영화제도 다녀왔고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남들 다 하는 유튜브에 도전해보자는 계획을 세운 채 겨울방학을 맞이했습니다. “따뜻한 봄에 만나요~”라는 인사가 무색하게 개강을 한 주 앞둔 시기에 대구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며 발칵 뒤집혔고, 그대로 모임은 중단됐습니다. 연령대가 높아 다들 외출을 꺼리시기도 했고,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될 때였으니까요.
“조금 잠잠해지면 만나는 게 좋겠어요”라며 시기를 보기를 한 달, 두 달…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어떻게 살고 계신지 근황이라도 확인할 겸 온라인 기획회의를 Zoom으로 진행했습니다. 혹시라도 앱 사용이 어려워 참여를 못 하실까 싶어 접속방법에 대한 영상을 제작하여 숙지하도록 했습니다.
4월 말에 첫 회의를 했으니 겨울방학이 5개월이나 된 셈이네요. 40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회의방에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고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못해 영상이 멈춘 적도 있지만 새로운 회의시스템에 어르신들 모두 “그래. 나도 온라인회의 해봤지”라며 즐거운 경험으로 만족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온라인에서 얼굴을 마주한다 하더라도 진짜 만난 것 같지 않은 느낌 때문에 “긴 얘기는 만나서 하입시다”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죠.
그로부터 한 달 후, 드디어 대면모임을 시작했는데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코로나19와 관련된 뉴스를 연일 지켜보면서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은 신체적인 무기력함으로 나타났습니다. 활동력도 떨어지고, 의욕도 떨어지면서 동아리 활동을 쉬고 싶다는 인원이 많아 동아리모임을 해체하는 것까지 논의되었습니다.
다행히 회장님의 간곡한 설득으로 활동은 재개되었지만 애초에 계획했던 유튜브는 야외촬영이 많을 것 같아 난색을 표하셔서,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담는 미니 다큐멘터리제작과정으로 변경하여 시작했습니다. 날이 너무 뜨거워 한 주 쉬어가는 날에는 “이제 좀 그만 쉬고 싶다”는 의견도 내시는 걸 보니 이렇게 억지로라도 일정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미디어교육에도 배리어프리가 가능할까?
장애 유형과 생애주기에 따라, 그리고 이주 경험에 따라 효과적인 수업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교육적 환경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미디어소외계층 대상교육은 상시로 진행되지 못하며, 교육과정 개설은 한정적입니다. 한정적으로 개설되는 교육은 기초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참여자들은 기초교육으로 인해 관심사가 확장되어 센터에서 이뤄지는 다른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싶다 하더라도 수어통역이 없어서, 활동보조를 받을 수 없어서, 빠르게 진행되는 교육과정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등의 여러 가지의 이유로 포기하기 마련입니다.
미디어센터의 역할이 미디어를 통해 사회 통합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한다면 계층별 분리교육과 더불어 통합교육이 가능한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을지, 장벽 없는 미디어교육을 위한 환경은 무엇일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미디어 소외계층의 경우 정보력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정보를 얻는 창구는 대부분 자주 이용하는 복지관, 기관, 시민단체의 복지사 또는 활동가,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입니다. 상설교육은 각 센터의 홈페이지, SNS를 통해 홍보를 하기 마련인데, 그 효과가 이들에게까지 미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교육을 복지기관 이용자에게 홍보해줄 수 있는 복지사, 담당자에게 품을 들여서라도 관계를 잘 다져놓는다면 이용자분들께 다가가기가 쉬울 것입니다.
가정 내 미디어교육은 마을 단위 소규모 그룹으로 참여자를 모집하여 결혼이주민과 지역 주민이 함께 수업을 들으며 육아 경험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네사람들과의 소모임을 시작으로 공동체 미디어교육으로 확장하여 다양한 프로젝트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농아인의 경우 최근에는 인공 와우 수술을 많이 하고 있고, 언어치료를 병행하여 구화가 가능한 분들이 많습니다. 과정 내 수어통역이나 속기사를 배치할 수 없다면 안드로이드 앱 “음성자막변환”을 사용하면 강사의 설명을 자막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강사의 발음에 따라 조금씩 오역이 되기도 하지만 되도록 강사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배치하고 천천히 또박또박 이야기하면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물론 강사도 기본적인 수어가 가능하면 더 좋겠지만요. 수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농아인분들이 쉽게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자체예산이 있다면 모를까 운영비가 지원되지 않는 대구MBC센터의 경우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공모사업의 경우 해당 연도 사업의 성과가 좋아야지 연속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전한 방향으로 교육사업을 꾸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계점으로 남아있습니다. 내년에는 정말 센터가 독립을 해야하는데요. 몸이 가벼워지는 만큼 다양한 원데이수업, 단계별 단기수업 등을 운영해보고자 열심히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연령, 장애유무를 떠나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실험적 미디어교육은 무엇이 있을지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분은 연락주세요. 커피 한잔 사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