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의 풍경은 이제 익숙해진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또 너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일터에서의 업무환경이 변하고, 사람 간 만남의 방식도 변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혐오의 단어들은 '이런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무마되거나 정당화되곤 합니다.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는 그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 흔들리지 않고 고수해야 할 역할과 가치를 다시금 살피는 것은 중요할 것입니다.
이번 호 <미디어센터 이슈>에서는 코로나19로 "바뀌어버린" 미디어센터 풍경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한 센터의 활동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보편적인 권리로서 누구나 장벽없이 미디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언제나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활동을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 '재난'과도 같은 이 시기에 더욱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코로나19가 바꿔놓은 미디어센터의 풍경,
그럼에도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
박민욱(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
사람은 변화에 적응을 참 잘하는 동물이다. 생각해보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인생에 수차례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처음엔 충격과 당황에 휘청거리다가도 이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의 방법들을 찾아내려 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하루하루는 꾸역꾸역 멈춤 없이 흘러간다.
만약 작년의 나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얘기한다면 어땠을까. “내년이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어서 서로 모이는 것을 꺼리게 되고,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해외여행은 전부 중지되고, 나라에서 모든 국민에게 긴급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센터들도 기약 없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그 누군가에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이 아니냐고 핀잔을 주었을지 모른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겠어. 다른 모든 것은 중단되고, 사람들은 그저 공포에 벌벌 떨면서 원래 하던 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겠지. 미디어센터들이 문을 닫게 된다고? 그러면 나도 다른 일 찾아봐야겠네.
하지만 다시. 사람은 변화에 적응을 참 잘하는 동물이다. 그 말도 안 되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실제로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처음엔 충격과 당황에 휘청거리다가 이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의 방법들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일상생활은 유지되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원래 하던 일들을 담담히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그동안 오랜 시간동안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자신만의 가치를 계속 고수해 왔기 때문에, 현 상황에도 불구하고 크게 동요하지 않고 담담히 원래 해왔던 일들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일 거다. 사람이 변화에 적응을 잘하는 이유는 변신을 잘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변하지 않기 때문이고, 변화에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일수록 그동안의 삶이 불안정했다는 반증. 똑같은 코로나19와 싸우면서 나라마다 각기 다른 상황들이 벌어지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겠다.
2020년 2월, 미디어센터들이 기약 없이 문을 닫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처음 한동안은 충격과 당황 속에 향후 벌어지는 상황들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었지만, 전국 각지의 미디어센터들은 역시 이내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고, 이 다음 단계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대응 관련 지난 뉴스레터 보기 ▶ 뉴스레터 06호, 뉴스레터 07호)
사람들이 “모일 수 없는” 현 상황 속에서, 그리고 앞으로 “함께 모이는” 활동에 대한 거부감이 사람들 마음속에 어떻게든 자리 잡게 될 미래를 앞두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미디어를 통해 지역 내 공동체를 회복, 시민의 참여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지역미디어센터의 역할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그동안 추구해왔던 미디어센터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게 될까. 내년의 나에게 정말 물어보고 싶다.
작년의 나에게, 지금의 이 상황이 전혀 예측되지 않았던 것처럼, 올해의 나에게 내년의 상황은 전혀 예측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의 이 전대미문의 상황들을 거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백하다. 미디어센터들이 그동안 오랜 시간동안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 본연의 가치를 계속 고수해 왔기 때문에, 현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장 무엇을 해야 하며 앞으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비교적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역미디어센터의 키워드는 ‘지역’과 ‘미디어’ 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코로나19를 대처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입에 오른 키워드 역시 ‘지역’과 ‘미디어’ 였다. 코로나19의 확산 상황은 늘 지역별로 산정되어 보도되었고, 각 지역의 아주 세부적인 정보들(지역 내 확진자의 동선, 선별진료소의 위치, 지자체의 대응 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미디어의 역할(원격 수업, 온라인 회의, 실시간 중계, 지역 언론 등)이 매우 증대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지역주민은 지역정보를 공유하고 집단지성을 모았으며 상호부조의 힘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이는 결국 지역의 회복력을 증가시켜 재난상황의 현명한 대처와 극복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지역미디어센터는 그동안 지역주민들이 미디어를 활용하여 지역의 세부적인 정보들을 공유하고, 지역의 현안과 이슈에 대해 토론하면서 집단지성을 모으고,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여 상호협력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확산 상황 및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지역미디어센터의 역할과 가치는 더욱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되며, 그동안 미디어센터에 축적된 성과와 경험은 이 위기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고 한층 단단해질 수 있다.
물론,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또 바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일 수 없는” 현 상황에서 대면보다는 온라인을 통한 소통, 교육, 공유, 상영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미디어센터의 사업 방식에도 역시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것은 어떻게 보면 외피에 불과할지 모른다.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미디어센터가 전략적으로 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했던 것은 불변의 사실이었고, 오히려 코로나19의 확산이라는 큰 변화는 어쩌면 미디어센터에게 전화위복의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지역미디어센터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오히려 한 단계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다시 미디어센터의 본연의 역할과 가치를 더욱 단단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외피를 다시 탈바꿈하는 데 지나치게 전력을 추구하여 본질을 놓치고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직면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뉴스레터를 통해 우리는 각 지역미디어센터들에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한 조치들을 어떻게 진행해왔는지 연속 기사들을 통해 살펴본 바 있다. 앞으로는 지역미디어센터의 미래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할 시기이다. 우선적으로, 이번 호에서는 드라마틱하게 “바뀐” 상황에서 “바뀌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지키기 위한 미디어센터의 노력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전 국민적인 재난 속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자칫하면 소홀히 다루어질 수도 있다. 그동안 지역미디어센터는 언제나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과 활동지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잊지 않고 이 시기에 오히려 관련 사업을 확대한 대구MBC시청자미디어센터의 사례는 “바뀐” 상황에서 “바뀌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또한, 서천군미디어센터는 지역에 대한 관심과 지역주민을 지원하는 사업을 “바뀐” 상황에 맞게 흔들림 없이 진행한 사례로서 지금 미디어센터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한다.
미디어센터는 그동안 그 숱한 변화에 적응을 참 잘 하여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미디어센터가 쌓아올린 성과와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변화에 담담히 대처하고, 오히려 변화를 이용하는 적극적인 전략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