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 뉴딜일자리 활동기
최주희 (2020-2021 뉴딜일자리 사업 참여자)
Chapter 1. 나
- 인생의 전반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던 시기, 그 후반전 시작을 전미협에서!
나는 마흔 살 가을, 전미협에서 뉴딜일자리[1]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경력 단절 여성으로 오랜 시간을 집에서 보냈고, 결혼·출산·육아를 거치며 나보다는 다른 것들을 신경 쓰며 살았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하물며 나란 사람은 무엇을 잘할 수 있으며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 자체도 잊어버린 채 살았던 시간이었다. 사회생활을 접었던 9년간 나를 지워 백지에 가까웠던 상태에서 단지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세상에 다시 발을 내딛게 되었고, 운 좋게도 전미협을 만나게 되었다.
첫 직장이었던 무역회사에서 만 5년이 넘도록 사회 생활을 경험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 다시 경험하게 되는 사회 생활은 그때와는 또 다른 맛이었다. '엑셀도 한글도 다시 잘 다룰 수 있을까?' 라는 생각부터 모든 일이 두려웠다. 하지만 모르는 것은 물어보면 되고, 능력치도 중요하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평소의 소신대로 난 그들이 원하는 모든 일의 조력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날마다 전미협에서 나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주 불안하고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는 달리 전미협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래서 나는 더 그들에게 그들의 '쓸모'가 되고 싶었다. 2020년 뉴딜일자리 사업이 종료되고 다음 해 재공고 시즌이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다시 함께 1년을 더 일해줄 수 있냐는 제안의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야호!"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전미협을 사랑하게 되었다. “당연히 당연히 더 일하고 싶습니다. ”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 스며들었다.
Chapter 2. 우리
- 전미협에서 우리가 함께한 일들
2020년 9월 이후 나는 두루두루 많은 일들을 경험하고 이루어 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일들을 정리해 보면 우선 2020년 진행된 <2020 시민 미디어 창작 콘테스트: 사회적 가치 공감>을 꼽을 수 있겠다. 전미협에서는 모든 일을 시작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결한다. 나는 콘테스트 담당자로써 포스터 제작 작업부터 시작하였고, 시민들이 제작한 영상 콘텐츠들을 수급하여 심사하고 심사한 작품들의 시상과 수상작들의 홈페이지 게재까지 근 3개월간 콘테스트 관련 업무를 스스로 해냈다. 출품된 작품들을 직접 보고 분류하고 수상자들에게 전달할 상장 한 장 한 장 출력에 꽃다발 배달까지 모든 업무가 끝났을 때, 심사표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데이터들을 정리하면서 내쉰 한숨은 마치 소설 한 권의 집필을 끝낸 소설가 같은 심정이었다.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업무는 <2021 미디어센터 스태프 역량 강화를 위한 온라인 연속강의 프로그램> 진행이다. 김수연 선생님이 메인으로 강사 섭외부터 프로그램 구성까지 도맡아 진행하셨고, 나는 필요한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매주 열리는 회의 시간의 화두는 미디어센터 스태프들에게 어떤 교육을 진행해야 더 큰 효과를 얻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였다. 김수연 선생님은 형식적으로 교육을 주최하고 시간과 비용을 쓰는 것이 아닌, 미디어센터 스태프들에게 실무적으로 도움이 될 주제와 강사진을 구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일 뿐만 아니라 직접 줌(Zoom)으로 진행하고 관련 자료들을 만들었다. 강의가 진행된 이후에도 후기를 받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해에 진행될 재교육 강의를 다시 준비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 프로다웠다.
전미협에서 진행되고 있는 보조금 사업은 노인미디어교육 사업과 상영·제작지원 사업으로 나뉜다. 나는 그 안에서 기본적으로 준비되어야 할 서류와 이나라도움 업로드 등의 사무 업무를 보조하였다. 이를 통해 사업 하나를 진행하기 위해서 그 프로그램 진행에 드는 많은 서류와 기반자료들을 전미협에서 관리하고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보조금 사업을 진행하는 각 미디어센터들도 자료들을 기록하고 사업 진행에 따른 서류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전미협은 그 자료들을 모두 총괄 검토하고 상부 기관에 재보고 하는 업무를 해야 한다. 보조금 사업은 매달 달별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서 기타 외부의 다른 업무들이 겹쳐도 그 기간 내에 반드시 해내야 한다. 전미협 사무실이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리라.
보조금 사업 업무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단연 <2021 노인 영상미디어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성과공유회>였다. 단 하루의 성과공유회를 위해 센터 별로 프로그램 진행 시 찍은 사진과 강사·수강생 인터뷰들을 받고 그 인터뷰들의 녹취를 풀어 자막 작업을 한 후 수강생들의 수료작품들까지 예쁘게 편집하는 업무를 진행했다. 성과공유회는 코로나로 힘든 한 해 동안 이루어 낸 성과에 대해서 다들 공유하고 수고했다고 감회를 나누는 자리였다. 준비과정에 생각보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들었지만, 한 해를 마무리 하며 그간 해낸 성과물들을 예쁘게 잘 아카이빙 한 것 같아 내가 직접 진행한 프로그램도 아님에도 보람이 느껴졌다. 어려운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미디어 취약계층을 상대로 미디어 교육을 하고 그들이 교육을 통해 한 발자국 더 나은 삶을 살게 된 것에 대한 소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직접 노인 수강생분들의 인터뷰 녹취를 풀면서 그분들이 한결같이 했던 말씀들이 떠오른다. "더 배우고 싶어요. 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주변에서도 많이 놀라고 저도 제가 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누군가의 알 권리를 돕고 조용히 세상을 달라지게 하는 일들을 전미협과 미디어센터가 함께하고 있었다.
Chapter 3. 너
- 꿈에는 한계가 없잖아
그들은 자신들의 기호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다. 주변의 상황에 맞추는 일에만 집중해왔던 내게는 신선하기 그지없다. 그런 특성들은 그들이 일할 때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그들은 극명하다. 원하고 원하지 않는 길이 분명하고 나아감에 망설임이 없다. 가끔은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설레기까지 하다. 목표를 향해 순수하게 밀고 나가는 그들의 확고한 신의와 목적의식 그리고 뒷심. 그들의 많고 많은 회의와 대화, 끝도 없는 고민과 의논, 쉬지 않고 울리는 메신저 알림음. 열정적이고 모르는 건 바로 바로 확인하고 공부하고 알아보고 시간을 들인다. 최고일지는 모르겠지만 늘 그들은 최선을 다한다.
처음에는 그들의 부드러운 말투와 급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려 깊은 행동들에 홀라당 넘어가서 그들을 물렁물렁하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그들은 단단했고, 어느 정도의 불안은 가지고 있었지만 본인들이 원하는 길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려웠다. 그들은 늘 미디어센터들 사이에서 전미협의 쓸모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떻게든 돕고 싶어 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전미협에서의 내 쓸모를 찾고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던 나의 모습의 확장판 같았다. 그들은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여유를 찾아냈고 한 단계 높은 격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전미협의 품위이다. 하루는 길고 긴 회의를 마치고 근데 우리 그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누군가의 막연한 질문에 또 다른 누군가가 대답을 던진다. 꿈에는 한계가 없잖아.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대사 아닌가... 그들은 진지하다.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꿈에는 한계가 없다.
전국 각 지역에 더욱 많은 미디어센터가 안정적으로 설립/운영될 수 있도록 전미협은 그들의 쓸모를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때로는 그들이 주춧돌이 되고 때로는 그들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어가며 함께 나아갈 것이다.
크고 요란하진 않지만 명확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그들은 그렇게 미디어센터들을 밀고 받치고 함께 나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이젠 멀리서나마 그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의 보석들이 모여서 다른 시너지를 내고 진지하고 열정적이며 매 순간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전미협. 고양이와 아이폰을 사랑하는 그들이여 영원하라!!!
[1] 사업기간 동안 참여자에게 일 경험과 기술·직무교육 등 취업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여, 사업 참여 후 민간일자리에 취업하도록 디딤돌 역할을 하는 서울시 대표 공공일자리로 뉴딜일자리의 일경험이 기업의 취업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다양한 현장의 실무 일자리로 구성·운영됨.